트레일러닝

Guide2026 트랜스제주 100K 실패기|10km부터 장경인대 통증, 성판악 DNF

2026 트랜스제주 100K에서 10km 지점부터 장경인대 통증을 안고 약 59km 성판악까지 이동한 뒤 DNF한 후기. 계획과 실제 CP 시각, 구간별 상황과 다음 도전을 위한 복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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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시, 제주월드컵경기장을 출발할 때만 해도 목표는 23시 30분 완주였다. CP1까지는 계획보다 5분 빨랐다. 하지만 약 10km 지점부터 무릎 바깥쪽이 시큰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약 59km의 성판악에서 빕을 잘랐다.

첫 트레일러닝 DNF였다. 10km부터 장경인대 통증을 안고 약 49km를 더 갔지만, 남은 45km가 어떤 길인지 알고 있었기에 멈추기로 했다. 이 글은 2026 트랜스제주 100K 성공기가 아닌 성판악 DNF 실패기다.

이 글의 통증과 약 복용 내용은 당시의 개인 경험이다. 장경인대증후군을 의학적으로 진단받았다는 뜻이 아니며, 같은 증상이 있다면 의료진의 진단과 안내를 우선해야 한다.

한눈에 보는 2026 트랜스제주 100K 도전 결과

항목 내용
대회일 2026년 10월 3일
목표 코스 제주월드컵경기장 출발·도착, 약 104km
실제 종료 CP5 성판악, 약 59km
이동 시간 05:00~19:40, 약 14시간 40분
DNF 이유 약 10km부터 이어진 무릎 바깥쪽 통증
사전 목표 23:30 완주, 18시간 30분

출발·도착 장소는 제주월드컵경기장이었다.

제주월드컵경기장

📍 제주월드컵경기장

계획과 실제 CP 통과 시각

대회 전 작성한 2026 트랜스제주 100K 자정 전 완주 계획과 실제 기록을 비교하면 통증이 레이스에 미친 영향이 분명하다.

지점 거리 목표 시각 실제 시각 계획 대비
START 제주월드컵경기장 0km 05:00 05:00 계획대로
CP1 치유의숲 7km 05:55 05:50 5분 빠름
CP2 영실 20km 08:20 08:40 20분 늦음
CP3 어리목 28km 09:55 11:10 1시간 15분 늦음
CP4 관음사 41km 11:20 12:30 1시간 10분 늦음
CP5 성판악 59km 15:50 19:40 3시간 50분 늦음·DNF
FINISH 제주월드컵경기장 약 104km 23:30 미도착 -

CP1에서는 계획을 앞섰지만 CP2로 가는 도중 통증이 시작됐다. 이후 오르막보다 내리막에서 더 큰 충격을 받았고, 백록담을 넘어 성판악으로 내려오는 구간에서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CP마다 다시 계산한 피니시 예상

트레일 대회 CP 페이스 플래너의 '레이스 중 다시 계산'은 CP에 실제로 도착한 시각으로 지금까지의 속도 비율을 구하고, 그 비율을 남은 구간에 똑같이 적용한다. 대회 전 계획표에 이번 기록을 넣어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계획표의 구간 시간에 CP 체류시간이 포함돼 있어 휴식 시간은 따로 빼지 않았다.

도착 CP 실제 시각 계획 대비 속도 다시 계산한 피니시 예상 목표 23:30 대비
CP1 치유의숲 05:50 9% 빠름 21:49 -101분
CP2 영실 08:40 10% 느림 다음 날 01:21 +111분
CP3 어리목 11:10 25% 느림 다음 날 04:12 +282분
CP4 관음사 12:30 18% 느림 다음 날 02:54 +204분
CP5 성판악 19:40 35% 느림 다음 날 06:03 +393분

계산으로는 CP2 영실에서 이미 자정 전 완주가 어려워졌다. 성판악에서도 제한시간 29시간(다음 날 10:00) 안에 들어오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 계산은 지금까지의 속도가 그대로 이어진다는 가정이다. 실제로는 내리막마다 통증이 심해졌고, 성판악 이후는 비 내리는 야간 돌길이었다. 계산상 제한시간 안이라는 사실보다 남은 45km를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가 먼저였다.

레이스 중에 플래너에 CP 도착 시각을 넣으면 이 계산을 바로 볼 수 있다.

전날 이동과 선수 등록

드디어 대회가 다가왔다. 제주행 비행기를 타고 제주공항에 도착한 뒤 5번 게이트에서 182번 버스를 탔다. 조금 기다렸지만 대기하던 사람들은 모두 탑승했고,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내렸다.

빕을 수령하고 대회 부스를 둘러봤다. 마트에 들러 다음 날 새벽에 먹을 도시락도 샀다. 숙소로 이동해 씻은 뒤 바로 잠들었다.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한 트랜스제주 선수 등록

오전 2시 30분 기상, 오전 5시 출발

오전 2시 30분에 일어났다. 전날 사 둔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고 롤케이크와 빵도 먹었다. 긴 레이스를 앞두고 탄수화물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대회장으로 이동해 화장실을 다녀오고 몸을 가볍게 풀었다. 어느새 출발 시각이 다가왔다. 신나고 즐거우면서도 긴장되고 떨렸다.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오전 5시, 참가자들과 함께 출발했다.

오전 5시 출발을 기다리는 트랜스제주 100K 참가자들

CP1 치유의숲 05:50|계획보다 5분 빨랐다

초반에는 도로를 따라 완만한 오르막을 달렸다. 신호와 병목에 걸리지 않기 위해 걷지 않고 느리게라도 계속 뛰었다. 어차피 후반에는 힘들 테니 초반 병목을 먼저 피하겠다는 작전이었다.

약 7km를 달려 05:50 CP1 치유의숲에 도착했다. 계획했던 05:55보다 5분 빨랐다. 물을 간단히 채우고 바나나 두 개를 먹은 뒤 바로 출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계획대로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치유의숲 CP1으로 향하는 초반 도로 러닝

약 10km|장경인대 통증의 시작

치유의숲 업힐에 들어섰다. 야자 매트를 지나자 돌과 나무뿌리가 있는 길이 이어졌다. 아직 어두웠기에 앞사람을 놓치지 않으려고 계속 따라갔다.

그런데 추월해 내 앞에 들어온 참가자의 속도가 떨어지면서 앞 무리와 간격이 벌어졌다. 뒤쪽 인원이 합쳐지면 내가 길을 이끌어야 할 것 같아 다시 앞사람을 추월했다. 앞 무리를 잡으려고 조금 무리해서 뛰었지만, 따라잡고 나면 그 앞 무리와 또 간격이 벌어져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속도로 정체 같았다.

몇 번을 앞지른 끝에 친구와 합류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무릎 바깥쪽이 뛸 때마다 시큰거렸다. 전에 겪었던 장경인대 통증과 비슷했다. 아직 약 10km밖에 오지 않았는데 걱정이 시작됐다.

어둠 속 돌과 나무뿌리를 지나던 치유의숲 구간

달리기를 멈추고 쉬면서 마사지한 뒤 조금씩 이동했다.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길고 지루한 하원수로 구간에 들어섰다. 쉬고 오르기를 반복하다가 트레일러닝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DNF를 생각했다.

친구에게 전화해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일단 CP2에서 만나기로 했다. 무릎을 부여잡다시피 하며 이동해 08:40 CP2 영실에 도착했다.

통증을 안고 이동한 하원수로 구간

CP2 영실 08:40|나무 지팡이를 짚고 윗세오름으로

CP2에서 보급하고 타이레놀 두 알을 먹었다. 친구는 자기 기록도 포기할 테니 끝까지 가보자고 했다. 그 말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약을 먹고 쉬는 동안 추위를 느껴 방수 재킷을 꺼내 입고 영실로 향했다. 걷는 것조차 힘들고 아파서 길에 떨어진 나무 하나를 주워 지팡이처럼 짚었다.

영실 입구에서 방수 재킷을 입고 이동하는 모습영실 입구에서 주워 든 나무 지팡이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부에 가까워졌다. 통증과 별개로 날씨는 참 좋았다. 멀리 보이는 능선을 보며 ‘저게 남벽인가?’ 생각했고, 윗세오름까지 계속 이동했다.

영실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구간영실에서 바라본 한라산 남벽 방향 풍경

영실 정상부와 윗세오름으로 이어지는 길

CP3 어리목 11:10|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아팠다

올라왔으니 이제 내려가야 했다. 오르막은 어떻게든 버텼지만 문제는 내리막이었다. 유튜브에서만 보던 어리목 하산길은 달리기 좋아 보였지만, 나는 뛰지 못하고 걸어야 했다.

내리막에서는 무릎이 깊게 굽혀질 때마다 통증이 더 심했다. 발끝이 걸려 다리가 뒤로 튕기면 비명이 나왔고, 단차가 높은 계단과 바위를 내려설 때도 충격 때문에 소리를 질렀다. 정말 포기하고 싶었지만 친구가 계속 붙잡아 줬다.

통증 때문에 걸어서 내려온 어리목 하산길

겨우 하산해 11:10 CP3 어리목에 도착했다. 보급하려 했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는 먹을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물만 채우고 쉬다가 관음사로 가보기로 했다. 관음사가 나의 마지막 CP가 될 거라고 생각하며 출발했다.

CP4 관음사 12:30|DNF하려고 달렸는데 다시 출발했다

어리목에서 관음사까지는 도로였다. 뛰기는커녕 걷기도 힘들었다. 원래대로라면 90km쯤 가장 힘들 때 들으려고 아껴 둔 음악을 틀었다. 영화 《록키》의 Going the Distance였다.

음악을 들으며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심박이 올라가자 잠시 통증이 줄어든 것처럼 느껴졌지만, 멈추면 통증은 두 배로 돌아오는 듯했다. 어차피 관음사에서 DNF하겠다는 생각으로 남은 에너지를 쏟았다. 같은 곡을 세 번쯤 반복해 듣다 보니 관음사 주차장이 보였다.

어리목에서 관음사로 이어지는 도로 구간

12:30 CP4 관음사에 도착했다. 장비 검사에서는 방수 재킷, 긴바지, 비상용 블랭킷을 확인했다. 라면과 밥을 받아 계단을 어기적어기적 올라가 앉았다.

관음사 CP에서 먹은 컵라면과 밥

밥을 먹고 나니 나도 모르게 드롭백을 찾고 있었다. 양말과 신발을 갈아 신고 에너지젤과 보급품을 챙겼다. 조금 길게 쉬자 다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관음사에서 끝내겠다는 생각은 어느새 사라졌고, 백록담을 향해 출발했다.

관음사 탐방로 입구에서 다시 시작한 백록담 등반

관음사에서 백록담|곰탕 속 두 번째 한라산

초반 길은 그나마 수월했다. 뛸 수는 없었지만 걸을 수는 있었다. 목교를 지나 개미등에 들어서자 긴 계단과 바위 계단이 이어졌다. 오르고, 아프면 쉬고, 다시 오르기를 반복했다.

관음사 코스의 목교와 이어지는 계단

삼각봉대피소가 보였다. 친구는 예전에 기상 악화 때문에 이곳에서 돌아간 적이 있었다. 화장실에 들른 뒤 다시 백록담으로 출발했다.

관음사 코스의 삼각봉대피소관음사 코스에서 바라본 왕관바위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몇 번이나 쉬며 올랐다. 마침내 백록담에 도착했지만 이른바 ‘곰탕’이었다. 짙은 안개뿐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CP5 성판악 19:40|빕을 자르고 끝낸 첫 DNF

날이 흐려지고 바람까지 불어 추워졌다. 이제 성판악으로 내려가야 했다. 예전 기억에는 데크가 많은 길이었는데 실제로는 너덜길과 데크길이 절반씩 섞여 있었다.

데크는 그나마 걸을 만했지만 너덜길에서는 다리를 여러 번 부딪치고 접질릴 뻔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날은 어두워지고 비는 점점 굵어졌다.

여기에서 정말 포기하기로 했다. 내 속도에 맞춰 가다가는 비를 맞은 친구의 체온까지 떨어질 것 같았다. 포기하겠다고 확실히 말하자 친구는 그제야 나를 놓아주고, 식사를 하기 위해 먼저 내려갔다.

헤드랜턴에 의지해 겨우 19:40 CP5 성판악에 도착했다. DNF를 신청하자 운영요원이 가위로 빕을 잘랐다. 시원하면서도 섭섭했다.

비가 내린 저녁 성판악 CP에서 마친 트랜스제주 100K

성판악에서도 내가 도착했을 때는 먹을 것과 물을 구하기 어려웠다. 후반에 도착한 참가자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현장은 어수선했다. 평소 CP에서 먹고, 추가 보급도 챙겨 달리면서 먹던 습관에 기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나 역시 돌아보게 됐다.

회차 버스는 컷오프 시각에 출발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결국 다른 DNF 참가자들과 택시를 타고 경기장으로 돌아갔다. 함께 탄 커플로 보이는 두 분은 택시비도 받지 않았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다음에 다시 만나면 인사하기로 한 뒤 헤어졌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잠들었다.

왜 성판악에서 멈췄나

성판악에는 결승까지 약 45km가 남아 있었다. 출발 10km 지점부터 약 49km를 통증과 함께 이동했지만, 후반 45km가 편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대회 전 조사로 알고 있었다.

비가 내린 야간의 돌길과 진흙, 계류를 통과해야 했다. 이미 내리막에서 다리를 제대로 지탱하지 못했고, 성판악 도착 시각은 계획보다 3시간 50분 늦었다. 계속 가는 것은 단순히 느린 문제가 아니라 넘어지거나 부상을 키울 위험에 가까웠다.

59km를 왔으니 더 갈 수 있다는 생각보다, 남은 45km를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봐야 했다. 이번에는 포기하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음 날 오전 7시, 친구의 완주

다음 날 오전 7시 친구가 결승선을 통과했다. 나와 헤어진 뒤에도 또 다른 부상자를 만나 함께 이동했다고 했다. 벌에 쏘인 사람, 발목이 돌아간 사람, 성판악에서 장경인대 통증이 시작된 사람까지 모두 어딘가 하나씩 문제가 있었다.

마치 전쟁터의 낙오자들이 서로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영화를 찍은 것 같았다. 친구는 자기 기록을 포기하면서까지 나를 영실부터 성판악까지 데려왔다. 덕분에 나는 혼자였다면 훨씬 일찍 끝냈을 길을 59km까지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방수 재킷은 예뻤다.

다음 도전을 위한 복기

이번 실패에서 남길 것은 분명하다.

  • 초반 병목을 피하려고 앞 무리를 따라잡은 판단이 결과적으로 무리였을 가능성이 있다.
  • 10km에서 통증이 시작된 뒤에는 기록 계획이 아니라 안전한 중단 지점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했다.
  • CP 보급이 부족할 가능성까지 생각해 개인 비상 보급과 물 운용 계획을 따로 세워야 한다.
  • 오르막을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이 내리막까지 버틸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 동행자가 기록을 포기하고 돕는 상황까지 왔다면 내 상태뿐 아니라 동행자의 안전도 함께 판단해야 한다.

이번 도전은 성판악에서 끝났다. 100K 완주에는 실패했지만, 통증을 참고 간 거리만으로 성공을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초반 운영과 중단 판단 모두 다음 도전에서 고쳐야 할 숙제로 남았다.

2026년 나의 트랜스제주 100K는 59km, 성판악에서 끝. 내년에는 이번 기록을 들고 다시 출발선에 서고 싶다.

내년 리벤지를 기약하며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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